성공과 실패로 만든 씨줄과 날줄: 7기 지호의 도전

샘물은 저에게 ‘도전’을 ‘도전’할 수 있게 해 준 곳이에요. 샘물에서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좀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판적 시선’으로 꿈을 찾는 여정에 있는 7기 지호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7기 지호는 도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성공했던 도전도 있었고 포기했던 도전도 있었지만 샘물에서의 도전들 덕분에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샘물에서 경험한 지호의 도전.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샘물 덕분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었어요” 지호에게 샘물은

샘물은 저에게 ‘도전’을 ‘도전’할 수 있게 해 준 곳이에요. 말장난 같아 보이는 말이지만 저에게 샘물은 그런 곳입니다. 실전에서 도전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리스크가 큰 위험이거든요. 그런데 샘물에서의 도전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좀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나는 가장 큰 도전은 국토순례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국토순례에서는 11학년이 조의 리더가 되어 7학년부터 10학년까지의 후배들을 이끌어가게 되는데 사실 후배들과 함께 4박5일동안 약 80km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책임이 큰 부담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제가 조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 조장들이 보여주었던 섬김과 배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맨 처음 갔던 7학년 국토순례는 지리산이었는데 산이 험해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때 선배들이 가방을 들어주거나 물이 떨어지면 자신의 물을 나눠주면서 저를 도와주었던 기억이 많이 났습니다. 저도 11학년이 되어 조를 이끌며 제가 받았던 섬김과 배려를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실천하고 싶어서 도전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이었어요.

그럼에도 뼈아팠던 도전

실패한 도전, 힘든 도전도 많았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고등학교 소논문 대회예요. 샘물에서는 소논문 대회라는 교내 대회가 있는데요, 전문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주제를 정해 나름 작은 논문을 하나 쓰도록 격려하는 대회입니다. 제가 워낙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아 저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론을 연구해 작은 논문을 쓰고 싶었는데… 막상 해 보니 너무 어려워 힘들게 힘들게 하다가 포기했었거든요. 정말 어려웠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도전이었어요. (논문 주제가 뭐였나요?) 정당 지지율과 언론 신뢰도의 관계였어요. 뉴스를 보면서 언론사에 따라 뉴스 내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유는 뭘까,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시각이 달라서 그런 건가 궁금해서 주제를 잡게 되었어요. 필요한 데이터를 찾는데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어 포기하게 되었지만 학과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던 도전이었습니다.

샘물 이전의 나와 샘물 이후의 나

샘물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샘물에서 공동체문화, 함께 생활하는 것들을 경험하면서 남과 함께 하는 것, 이타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그것이 현재 제 생활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요.

저희끼리는 대학에 가면 조별과제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 조별과제를 할 때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고 보통은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원하기 때문에 서로 조율해야 하는게 많습니다. 이번 학기 교양시간에 조별 과제를 하게 되었는데 저에게도 쉽고 편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우리 팀이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을 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양보를 하니, 다른 조원들도 그럼 나는 이걸 양보하겠다, 그럼 나는 이걸 배려하겠다 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경험이 있었어요. 샘물에서 내가 보고 배운 경험들이 이런 거였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호가 꼽는 샘물에서의 한 장면

샘보가 딱 떠오릅니다. (편집자주: 2017년 창간된 샘보는 학생들이 직접 기획, 취재, 제작하는 샘물신문으로 동아리활동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어요.) 샘보에 기사를 쓰고 그걸 학교 곳곳에 붙이고 다녔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 샘보가 창간되었는데 그때 고등학교 선배가 기사 하나 써 달라고 해서 오피니언 기사를 하나 썼었고, 고등학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샘보 활동을 하면서 비판적인 기사를 담당했던 것 같아요. 당시 썼던 기사 중에 샘물의 안전불감증 기사가 가장 기억이 납니다. 화재경보가 울리는데도 학생들이 ‘뭐야, 또 고장났나보네’ 하고 아무렇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각심을 높이고자 관련 기사를 썼었어요. 제 기사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이후로 여러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샘보의 기자 활동부터, 정당 지지율과 언론 신뢰도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소논문 도전을 거쳐 지금의 정치외교학 전공 선택에 이르기까지… 지호의 모든 도전이 성공으로 끝났던 것은 아니지만 실패의 낙담과 성취의 기쁨을 반복했던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져 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샘보에서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들을 통해 발전을 보았어요. 다양한 생각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의견이 안 맞더라도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나쁘지 않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런 솔직하고 편안한 대화를 계속했기 때문에 논쟁이 가능했고 논쟁이 가능했기에 발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단어로 본인을 소개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본인은 비판 기사 담당이었기에 ‘샘보의 악질 기자’로 소개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다, 홈페이지에 인터뷰가 소개된다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시고 걱정할 것 같다며 ‘비판적 시선을 가진 샘보 기자’로 소개 문구를 정정해준 7기 지호. 그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꿈을 찾는 여정 속에서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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