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년차 영어교사였던 이 젊은 선생님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09년 기독교학교 개교와 함께 교사를 시작해 맡은 네 번째 반이었다. 담임으로서 학급 운영도, 영어 교사로서의 수업도, 무엇보다도 이제는 제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잘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 해 신입생들은 완전히 달랐다. 뭔가… 어려웠다. 그 전 아이들과 확연히 달랐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뭘까.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들과 부딪히며,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교 안팎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집단적 트라우마”
마치 전쟁을 겪었던 세대와 같이, 이 아이들은 가해학생 혹은 피해학생, 그리고 방관자로 왕따와 학교폭력, 그 고통과 갈등의 한복판을 지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2011년 대구 중학교의 왕따 자살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드러난 그 갈등에 어쩌면 오랫동안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샘물중고등학교 4년차 영어교사 로리샘 안은경 선생님을 회복적 교육의 길로 들어서게 한 최고의 스승들이었다.
왕따에 대한 공동체적 트라우마
공동체적 트라우마였기 때문에 그 상처의 존재 유무는 기독 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이냐 아니냐와는 큰 상관이 없었어요. 아이들이 왕따에 대해 반응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는데 극단적이거나 무감각했어요. ‘어른들에게 말하면 일이 커져요’ ‘왕따 당하는 애는 예전에 자기가 남을 왕따시켰던 애예요. 왕따 당할만해요’와 같은 반응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또래문화 안에서 겪은 갈등을 평화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어요. 생각해보니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 세대가 갈등 앞에서 그것을 평화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배워왔던가? 아니었어요. 갈등과 폭력의 피해를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으로 전환하고 회복시키는 힘, 그것을 기르는 교육에 대해 관심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이번에 출간된 ‘회복적 교육’은 로리샘의 두 번째 번역서다. 2018년 회복적 교육의 실행서 개념인 ‘서클로 나아가기: 교육공동체를 회복하는 서클 레시피 112’를 공동 번역한 이후 두 번째 역저다. 이 분야를 좀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 2017년부터 갈등전환학으로 명성이 높은 미국 Eastern Mennonite University(이스턴 매노나이트 대학)에서 갈등전환학을 공부했고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올해 다시 샘물중고등학교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회복적 교육이 무엇인지 물었다.
회복적 교육은 관계와 공동체 중심 교육
회복적 교육은 한 마디로 말하면 관계와 공동체 중심 교육이예요. 회복적 교육은 기존에 있었던 교육이기도 하면서 –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은 학자와 교육자들이 교육에서 관계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했거든요 –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평화적으로 갈등을 다루는 교육이 처음이기에 새로운 교육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회복적 교육은 훈육에서 시작됐어요. 2010년대 학교폭력 사건들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무관용정책으로 학교폭력에 대응했는데 그게 잘 작동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가운데 기독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무관용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회복적생활교육을 제시합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피해’는 규칙 위반이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의 훼손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회복적 생활교육은 단순히 가해학생에게 규칙 위반으로 처벌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피해학생과 공동체를 회복하고, 가해학생이 자발적 책임지기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운동입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안으로 출발했기에,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교폭력과 갈등을 다루는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일단, 학교폭력이라는 급할 불을 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와 공동체 교육은 비단 생활지도와 생활교육에만 국한 되지 않기에,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는 교사와 학교는 교과교육과 교육과정에까지 회복적 생활교육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책은 출판되기 바로 직전까지 제목을 고민했어요.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이미 알려진 용어에서 회복적 교육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써야 하는데, 그 부담감이 크더라고요. (*이 책의 원제는 Restorative Justice in Education이다). 회복적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신념과 가치, 철학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기에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생활’을 빼고 ‘회복적 교육’이라는 개념을 썼어요. 훈육과 지도에서 생활문화로, 그리고 이제는 교과 수업까지 포함한 학교의 모든 분야에 회복적 교육의 철학이 반영되고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함께 회복적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육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이셨던지 이 제목만으로도 맞는 말이라고 긍정해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지난 9년 간 회복적 교육을 고민해온 로리샘의 학급과 수업. 회복적 교육의 원칙이 반영된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과 교사가 함께 안전한 배움의 공간 만들기에 힘썼어요. 반의 경우, 반이 영어로 Homeroom이예요. 학생들에게 반은 가정과 같은 곳이에요.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안전한 공간이 되기에 힘썼어요. 또, 아이들 한 명 한 명, 모두의 목소리가 들려지는 민주적이고 환대하는 공간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서클이라는 대화 기술을 활용하는데요. 서클은 아이들과 교사가 동그랗게 둘러 앉아 토킹 피스(talking piece)를 돌려가며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토킹피스를 가진 사람만 말하기에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습니다. 또 말하기를 선택할 수 있어요. 토킹피스를 갖고 있지 않을 때에는 토킹 피스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요. 이 과정을 통해 자기표현, 자기주도성, 리더십, 온전한 존중과 경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갈등을 삶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고,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갈등전환적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갈등을 피해야 하는 것, 나쁜 것,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하거나 억압하거나 이기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갈등이 발생했을 때 회복적 대화 모임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고 전환하는 것을 경험하도록 했어요.
서클을 학급 운영뿐 아니라 영어 수업에서도 활용했고 특별히 스토리를 많이 만나는영어 과목의 특성상 스토리 안의 갈등을 들여다보면서 갈등 당사자간의 욕구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질문을 던지고 많이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학생들은 어떤가요? 좋아하나요? 잘 따라오나요?
낯설어 했죠. 대화모임 서클을 진행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이 있어요. 담임으로 일년 내내 대화모임을 했던 학급이 있었어요. 갈등 상황에서의 대화 모임이란 게 사실 참 많이 힘들어요. 나와 갈등이 있는 상대를 만나 대화해야 하는 일이기에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심적으로 엄청난 힘이 필요한 일이에요. 일년동안 대화모임을 지속적으로 했던 학생이 어느 날 그러더라구요. 힘들다고… 그런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그 친구에게 내 말을 전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없었을 거라고. 그 아이들이 제가 유학을 갈 때 써 준 편지들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써 준 이야기들이 있어요. ‘관계, 평화, 대화, 비폭력, 공동체’ 을 알게 됐다고..
갈등을 회피하기보다 전환하고 회복하는 힘으로 샬롬의 전파자 되길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갈등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더 갖고 있어요. 학생들에게는 관계 문제가 삶의 전부일 수 있어요. 저는 우리 학생들이 갈등을 회피하거나 단지 아파하고 그 피해를 끌어안고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으로 갈등을 전환하고 회복하는 힘을 갖도록, 갈등과 피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원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갖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싶어요. 앞으로 우리 학생들이 세상에 나가서 겪게 될 무수히 많은 갈등 상황에서 그 힘을 가지고 빛 되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공동체의 갈등을 전환하고 회복하는 문화변혁자, 샬롬의 전파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과 전공의 통합이 늘 기도제목이었고 그래서 샘물중학교가 개교를 준비하며 진행했던 기독교사 아카데미의 8주 과정을 통해 기독교사로서의 소명을 뚜렷이 확인했다는 로리샘. ‘샬롬을 위한 교육’이 기도제목의 응답으로 도전이 되어 지금도 샘물중고등학교 안에서, 그리고 학교 밖 기독교사들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회복적 교육의 가치를 확인하고 확산하고 실험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은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면 무조건 처벌을 받는 무관용정책이었는데 작년에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어 학교와 당사자가 모두 동의하면 회복적 대화모임 등을 통해서도 마무리될 수 있도록 피해를 다루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회복적 교육과 서클 대화 모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많아졌어요.
제가 초기에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하며 많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기에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샘물에서는 회복적 생활교육 전문모임을 섬기고 있고요. 코로나19로 아직 본격적인 시작은 못했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서클을 하며 샘물 안에서 회복적 교육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공부해보고자 해요. 또, 좋은교사운동 회복적생활교육센터에서 회복적 대화모임이라는 내용으로 한국교원대 교사 연수 강의 영상을 제작하는데 저도 함께 하고 있어요.
회복적 교육에 대한 세 번째 번역서를 준비중인 로리샘. 놀이와 활동중심 배움을 통해 관계와 공동체 중심의 교육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담은 책이다. 김포의 중학교 영어교사인 이병주 선생님과 함께 작업중인 이 책은 올해 안에 발간될 예정이다.
2020년 가을, 샘물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서클 모습
Circle은 둥글게 모여 앉아 존중하며 말하고 듣는 공동체 대화방식입니다.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발언기회를 갖고 말하기를 선택할 수 있기에 민주적이고 평화적 말하기로, 갈등 상황에서는 ‘회복적 대화모임’으로 일컬어지는데요. 샘물중고등학교, 고등학생 청지기들이 각 반에서 대화모임 서클을 진행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어 가고 있는 나의 생각,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위한 가치 등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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